'뜨거운 상징'의 생애
30세 - 1972년
3월에 김병익, 김주연, 김치수와 『현대한국문학의 이론』을 출간하다. 이 책을 통해 4·19세대 작가들에 대한 비평적 지원 그룹이 가시화되다. 네 사람을 일컫는 '문지4K'라는 말이 『주간한국』 정달영 기자에 의해 처음 사용되다. 김윤식과 함께 「한국문학사」 연재를 시작하다. 11월, 차남 상수 태어나다. 『구조주의란 무엇인가』를 번역 간행하다.
31세 - 1973년
9월, 두번째 평론집 『상상력과 인간』을 출간하다. 『한국문학사』 연재를 『문학과지성』 겨울호로 끝맺다. 10월, 유신 체제 발족하다. 민음사의 '세계시인선'을 기획하고,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를 번역, 해설하여 출간하다.
32세 - 1974년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을 '세계시인선'으로 번역 출간하다. 비평집 『사회와 윤리』를 간행하다. 이휘영 등과 『불문학개론』을 만들어 출간하고, 「현대 비평의 여러 양상」이라는 글을 싣다. 10월, 바슐라르 연구를 위해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으로 1년 예정의 유학을 떠나다. 12월 바슐라르의 족적을 찾아 디종과 파리, 김치수가 있는 프로방스를 여행하다.
33세 - 1975년
김치수와 함께 발레리의 고향인 세트, 바슐라르의 고향 바르 쉬르 오브에 갔다가 바이욘을 여행하다. 3월, 서울대학교 교양과정부 전임교수제 폐지로 인문대학 불문과 교수가 되다. 집안 사정으로 귀국하다. 김병익, 김치수, 김주연과 함께 문학과지성사를 설립하다. 『문학과지성』 겨울호에 「한국 문학의 위상」을 연재하기 시작하고 평론집 『시인을 찾아서』를 출간하다.
34세 - 1976년
김주연과 공편으로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하다. 8월, 제안하고 직접 교섭에 나서서 성사시킨 '최인훈 전집'을 내기 시작하다. 『한국 문학의 위상』을 쓰는 작업에 몰두하다. 곽광수와 『바슐라르 연구』를 내다.
35세 - 1977년
『문학과지성』을 문학과지성사에서 직접 발행하기 시작하다. 5월, '작가론 총서'를 기획, 첫 권인 『이광수』를 출간하다. 같은 시기에 기획한 '젊은 시인선' 간행되다. 바슐라르 『불의 정신분석』을 번역, 출간하다. 「한국 문학의 위상」 연재를 마치고, 같은 제목으로 출간하다. 동료, 제자, 문인들과 어울려서 구반포 삼거리 '반포치킨'에서 자주 어울려 술을 마시다.
36세 - 1978년
월간 『뿌리깊은나무』의 편집위원을 맡다. 『현대 프랑스 문학을 찾아서』를 간행하다. 역서 『몽상의 시학』을 간행하다. '젊은 시인선'을 '문학과지성 시인선'으로 제목을 바꾸자고 제안하고, 주도적으로 진행하다. 그간의 수필들을 모아서, 『반고비 나그네 길에』를 출간하다. 12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부친이 별세하다.
37세 - 1979년
롤랑 바르트, 베베르, 피카르의 글을 편역한 『현대비평의 혁명』을 간행하다. 『뿌리깊은나무』에 썼던 글을 모은 『우리 시대의 문학』을 네번째 평론집으로 간행하다. 10월 박정희가 죽다.
38세 - 1980년
다섯번째 평론집 『문학과 유토피아』를 간행하다. '현대문학상'을 수상하다. 5월 17일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7월, 『문학과지성』이 신군부 권력에 의해 강제 폐간당하다. 조광희와 공역으로 골드만의 『인문과학과 철학』을 출간하다.
39세 - 1981년
1977년 서울대 불문과에서 프랑스 비평사 강의를 맡으면서 구상되고 준비한 『프랑스 비평사: 현대편』이 간행되다.